아빠, 남편이 쓰는 출산 후기 – 충무로 제일병원


우리가 출산 전 계속 다니고 분만까지 하게 된 병원은 충무로에 있는 제일병원이다.

제일병원은 대학병원은 아니나 종합병원 비스무리한, 중급 규모의 병원이다. 예전에는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것 같으나 지금은 아니다. 흔히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종합병원 산부인과를 꼽으라면 강북에선 제일병원, 강남에선 차병원을 꼽는다. 그만큼 유명한 병원이지만, 그만큼 산부인과 환자들도 엄청나게 많다.

우리도 처음부터 여기를 간건 아니었고, 처음엔 집에서 가까운 분만 가능한 산부인과를 갔었다. 인터넷 후기도 꽤 좋은 산부인과 였으나,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불친절함에 실망하게 되었고, 좀 큰병원으로 한번 가보자 해서 간 곳이 제일병원이다.

담당 의사선생님을 잘 만나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의사선생님도 친절하고 간호사분들도 모두 친절했다. 간단한 피검사는 나중에 결과보러 따로 올 필요 없이 당일날 검사 1시간 후 결과가 나오는 것도 편리했고, 정밀초음파도 초음파실에서 따로 보는 것도 괜찮았다.

단점은, 사람이 정말 많다. 그래서 진료를 보러 가게 되면 대기시간이 너무너무 길다. 그리고 주차도 차량이 많아서 대기해야 한다. 주차하는데만 몇십분씩 걸리기도 한다.

치명적인 단점은,  32주차가 되기 전에 성별을 알려주지 않는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안 알려준다. 힌트도 전혀 주지 않는다. 힌트 줬는데 못 알아들은건 절대 아니다. 물어봐도 안 알려준다. 안 알려주는걸로 유명한 병원이다. 철저했다. 31주 6일째에 가도 안 알려준다고 한다. 우린 32주 넘어서 가도 물어보기 전까진 알려주지 않았다. 32주 넘은 다음에 물어봐서야 알려주셨다. 이걸 지키다니 정말 대단한 병원이다. (법으로 32주가 넘어야 태아 성별을 알려주게 되어 있는걸로 알고 있음.)

다른 큰 병원도 그렇겠지만, 제일병원도 여러가지 교육 프로그램들이 있는게 참 좋았다. 3주짜리 제일맘스쿨, 모유수유 교육, 임신 초기/중기/말기 교육이 모두 무료였다. 그리고 유료 교육중에 소프롤로지 분만교육이라는 것도 받았는데, 여기서 배운 호흡법이 아내 말로는 출산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 교육에선 진통실 견학도 있고 출산 과정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것도 미리 보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동영상이 너무 적나라해서 조금 놀라긴 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제일병원에서의 출산은 대 만족이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친절함.

분만실 간호사 선생님들, 입원실 간호사 선생님들, 담당 의사선생님 모두 정말 친절하게 대해줘서 마음이 정말 편했다. 늦은 밤, 새벽 시간에 찾아가서 물어봐도 친절하게 대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출산 후기인데 서론이 참 길었다.

 

대망의 D-Day.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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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실 앞 대기실.

 

저녁 즈음에 병원에 도착해서 분만실 입원하고, 다들 겪는 진통과정을 겪었다.

밤 중 진통의 단점일텐데, 침대에 누워 있는 당사자는 매우 고통스러운데, 옆에 있는 나는 졸리다는 거다.;;;;; 앞에선 힘들어 하는데 난 졸린 그 상황 자체도 꽤 큰 정신적 고통이다.ㅠㅠ 그래도 진통 초반에만 졸렸고 진통이 정말 심해지는 순간부터는 나도 잠이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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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해 보이는 진통실 가림막.

 

무통주사는 자궁경부가 3cm가 열리는 시점에 받게 되는데, 이 시점이 가까워올수록 산모는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이 길었고, 체감은 훨씬 더 길게 느껴졌다. 이때 옆에서 지켜보는게 정말 힘들다.

새벽 5시.
아내가 정말 힘들다고, 간호사쌤 불러달라고 해서 불러오니 3센치 열렸다고, 이제 무통 받을 수 있다고, 받겠냐고 물어본다. 여기까지 진상 안부리고 참아 준 아내가 대견했다. 무통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듯 하다.

이때 관장을 하게 된다. 그리고 수액을 맞기 시작했다. 무통시술은 약 15분정도 걸렸다.

무통은 주사같은건줄 알았는데, 허리에 매우 얇은 관을 삽입하고 그 관으로 계속 수액처럼 주사액을 주입시키는 방식이었다.

무통이, 정확하게는 무통이 아니다. 감통이다. 무통 맞는다고 통증이 없어지진 않는다. 그 전보다 좀 나을 뿐.

 

3센치가 열리는 시점까지, 그러니까 무통시술을 받기 전까지는 정말 긴 시간이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이전보다는 빨리 흘러간다. 3센치에서 5센치 까지는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진통실은 침대마다 칸막이가 있는 채로 침대가 잔뜩 있는 일반 진통실이 있고, 별도의 방에서 1인실처럼 단독 침대와 쇼파 등이 있는 가족분만실이 있다. 가족분만실은 정말 1인실 같은 분위기이다. 방 안에 화장실도 별도로 있고, 쇼파와 TV, 냉장고 까지 있다. 그리고 일반 진통실은 분만 직전에 분만실로 산모만 이동해서 진짜 분만을 한 다음 회복실로 이동해서 보호자와 함께 회복하다가 병실로 이동하게 되는데, 가족분만실은 거기서 분만, 회복까지 모두 이루어진다. 일반분만실은 보호자 1명망 같이 있을 수 있는데 가족분만실이라는 이름 답게 가족 3명까지 같이 있을 수 있다. 진짜 분만 때는 다른 가족은 밖으로 나가고 의료진과 남편만 같이 있을 수 있다.

가족분만실은 의료보험이 되지 않아 가격이 좀 센 편이고, 가격이 8시간 단위로 매겨졌다. 그래서 보통 처음부터 가족분만실을 가진 않고 어느정도 진통이 진행 된 다음에 옮겨져서 가족분만실에서 회복까지 8시간 정도 있도록 시간배분을 해서 가족분만실로 옮긴다.

새벽 6시 15분경.
처음 입원할 때 가족분만실로 이동 가능할때쯤 알려준다고 했는데, 무통을 맞고 시간이 지나도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5cm 정도 열린 시점에 물어보니 회복까지 8시간 안에 충분할 것 같다고, 원하면 이동해도 된다고 하셔서 짐 싸서 가족분만실로 옮겼다. 산모까지 짐싸서 걸어서 가는건 아니고, 산모는 침대 그대로 이동해서 거기서 다른 침대로 옮겨졌다. 산모에 의하면, 침대도 일반 진통실보다 훨씬 좋았다고 한다.

진통실엔 보호자를 위한 시설은 의자 1개가 전부였는데, 여긴 보호자에게도 천국이다. 가장 좋았던건 독립적인 공간이란 거. 일반 진통실은 부근 침대의 소음이 그대로 다 들리는 구조였기에 독립된 공간이라서 정말 좋았다. 좀 더 진통에 집중할 수 있달까? (진통에 집중이란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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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이 충분히 누울 수 있는 길이의 쇼파는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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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화장실 가려면 분만실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독립된 화장실도 정말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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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와 TV는 사실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물 두병은 서비스.

 

 

아침 8시.
6~7센치 정도 열렸다고 한다. 아기의 머리 방향도 양호하단다. 이때부터 산모의 본격적인 힘주기가 시작되었다. 이전에도 힘주기는 했지만, 이때부터는 어마어마한 고통과 함께 힘주기를 해야 했다.

 

아침 8시 45분.
이제 다 열렸다고 한다. 애기 머리가 보인단다. 이때부터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수시로 들어와 체크하고 힘주기를 도와준다. 아내는, 맨 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어 보였다. 말 그대로 산고의 고통이다. 애 낳아보지 않은 이상 모른다. (물론 나도 잘 모르긴 마찬가지)

 

아침 10시.

산모 상태를 체크해보더니 갑자기 간호사 쌤 어디론가 막 연락하고 엄청 바빠졌다. 얼핏 듣기로는 의사쌤을 부르는 듯 싶었다. 그리고 간호사 쌤  한명 더 들어와서 두명이서 같이 산모에게 달려든다. 그리고 날 부른다. 수술복 같은 초록색 옷을 입으라고 한다. 그리고 모자와 마스크까지 착용하라 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올 것이 오는 것인가.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더더욱 정신없어 진다.

평소 진료받던 담당 의사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당직 의사쌤이 아니라 담당 쌤이어서 다행이다. 다른 의사쌤도 같이 들어왔다. 그리고 자세를 잡으신다. 나는 산모 옆으로 갔다. 산모 얼굴 옆에서 같이 응원하며 서 있었다. 응원이 되는진 모르겠지만, 다행히 머리카락을 잡히진 않았다.

뭔가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간다.

그리고,

10시 8분.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가 나와서 아내 위에 올려두니 아내가 아기에게 ‘다 끝났어. 고생했어.’ 라고 한다. 그 말을 듣는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아기도 힘들었겠구나. 고생했다. 아기도, 아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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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바로 아기용 침대 위로 옮겨지고, 나도 같이 그 옆으로 불려가서 아기가 호흡을 하는 것을 도와줬다. 알아서 한건 아니고 시키는대로 했다. 그리고 난 다른 간호사쌤과 아기와 함께 아기를 신생아실로 옮기고 나서 건강상태 체크 결과를 듣고 다시 가족분만실로 돌아왔다. 돌아오니 아내 혼자 회복 중이었다.

그렇게 출산은 끝났고

아기는 세상의 빛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아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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